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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

Chapter 1 초창기: 셔만 여사와 신흥우의 Korean Misson (1904~1925)


셔만 여사
LA 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3월 11일 Florence Sherman 여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셔만 여사는 남편 Dr. Harry Sherman과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나갔다가 남편이 병에 걸려 죽자 Los Angeles로 돌아와, 1519 Hill Street에 있는 건물을 빌려 젊은 한인 유학생 청년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LA 한인연합감리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사의 저서 "독립정신"에 실린 사진
이승만 박사는 "독립정신"이라는 책에서 "의학박사 쇄어멘과 그 부인과 아들 형제"라는 제목과 "대한에서 전도하는 미국 선교사 중 본 저술가(이승만)와 가장 절친하던 친구"라고 소개하며 이어서 "일쯕 미국으로 돌아온 후 한인을 위하여 (로스안젤레스)에 교회를 설립함"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셔만부인은 한국에서 이승만과 같이 만났던 신흥우를 초청하여 USC를 다니게 했고 주일에는 자기를 도와 설교를 하게 함으로 신흥우는 우리교회의 초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신흥우는 배재학당을 다니며 이펜젤라 목사에게 은혜를 받고 감옥에서 이승만과 같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흥우는 LA로 온 후 곧이어 부인 이소사 여사를 초청하였고 신흥우의 가족은 셔만 여사와 같이 USC 근처 Magnolia Street에 있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학업과 목회를 인도하였습니다.

1519 Hill Street 건물

신흥우 초대 목회자


이 건물은 1519 Hill Street에 위치하였고 "Korean Mission"이라고 불렸으며 12명의 한인 유학생을 데리고 셔만 부인이 성경공부를 가르치면서 우리 교회를 시작한 곳입니다. 이 건물은 몇몇 학생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우리교회를 많이 도와준 L.A. First Episcopal Church에서 발행하는 Harvest라는 월간지 10월호에 소개되었습니다.




민찬호 제2대 목회자

신흥우는 주일예배 때마다 셔만여사의 설교를 통역하였습니다. 신흥우는 "The Rebirth of Korea"라는 USC 석사 학위 논문에서 한국은 자주 독립을 지켜야한다는 독립정신과 한국 백성들이 다같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모두 다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필력했습니다. 신흥우는 1910년 USC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배재학당의 제 3대 교장이 되었고 YMCA의 총재로 봉사하는 등 근대화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습니다.

신흥우
신흥우가 한국으로 떠나고 하오이 그리스도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민찬호 목사가 제2대 목회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민찬호 역시 배재학당과 정동교회에서 이승만과 신흥우와 같이 공부하며 믿음생활을 지켜온 독립운동가이며 목회자였습니다. 그도 USC를 다니며 공부와 목회를 병행하던 중 조국이 일본에 합병되면서 이곳 감리교 선교부의 협조마저 중단되자 우리교회 사정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친 목회자가 공석이던 LA 한인 장로회와 합병을 하면서 민찬호 목사는 합병한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고 우리 교인들도 장로교회를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로교 Mission과 통합한 후 몇몇 교인은 흩어졌으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민찬호 목사화 함꼐 장로교회 Mission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