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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 밟아"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7-21 (화) 13:54 조회 : 190

코로나바이러스가 바꾸어놓은 일상이 많습니다. 건강이나 사업의 직접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식당에서 식사하며 교제하는 즐거움도 빼앗겼습니다. 가족들의 만남도, 고국 방문도, 여행도 미뤄야 했습니다.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개스를 넣을 때도 마스크에 장갑을 챙기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잃어버린 지도 4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불편함으로, 아쉬움으로, 영적 목마름으로, 때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바뀐 일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두렵기만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바꾸어놓은 것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장례 문화'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저는 세 번의 장례식을 집례했습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장례식은 생각도 못 하고, 모두가 장지에서 하관 예배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5월 초에 드렸던 김명환 장로님의 어머니 장례 예배에는 10명만 참석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채, 15분 이내에 마쳐야 했습니다.

6월 초에 있었던 고 김교상 장로님의 장례 예배에는10명만 참석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45분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이었던7 18일에 열렸던 고 남정희 권사님의 장례 예배에는 인원도 조금 더 참석할 수 있었고, 시간도 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20여 명이 모인 조촐한 예배였지만, 선선한 나무 그늘에서 남정희 권사님의 일생을 돌아보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진솔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남정희 권사님을 기억하면서 맏아들이 조사를 했고,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셨던 김중정 장로님께서 애틋한 추모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 대표, 교인 대표가 다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남정희 권사님께 피아노와 무용 지도를 받았던 제자 대표로 김인용 목사님의 부인되시는 그레이스 김 사모님께 추모사를 부탁드렸습니다. 즉석에서 드린 부탁이었지만 남정희 권사님과의 추억이 남달랐던 만큼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추모사를 해 주셨습니다.

남정희 권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기 두 주 전쯤 김인용 목사님 내외분과 같이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마지막 예배가 될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남 권사님께서 평소에 좋아하시던 찬송을 같이 불렀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이었습니다. 2절을 부르고3절로 넘어갈 때, 남정희 권사님께 솔로를 부탁드렸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은 '나보고 솔로를 하라고'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으시더니 낭랑한 소리로 3절을 부르셨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그 찬양을 듣는 모두의 마음에 큰 감동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그 찬양에는 일생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오신 권사님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라는 소망도 담겨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가 그레이스 사모님에게 피아노 한번 쳐 보라고 했습니다. 옆방에 있는 피아노를 옮겨올 수 없기에 문을 열어 둔 채로 남정희 권사님은 침대에 누우셔서 제자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습니다.

안경을 챙기고, 큰 찬송가 책을 찾아오는 부산을 떨었지만, 인생의 마지막 길을 앞둔 스승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연주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제자의 마지막 연주를 들으시는 남 권사님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그레이스 사모님이 권사님을 향해 달려오면서 밝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권사님 나 잘했죠?" 남 권사님은"그래 잘했어, 참 잘했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페달 밟아."

피아노 페달을 밟아야 소리가 좋아진다는 권사님의 재치 있는 원포인트 레슨은 모두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물했습니다. 남 권사님의 장례 예배를 집례하는데 "페달 밟아"라는 권사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았습니다.

권사님이 말씀하셨던 페달은 피아노에 있는 페달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갑니다. 자동차에는 앞으로 나가게 하는 페달만이 아니라 멈추게 하는 페달도 있습니다. 물론, 피아노에서 페달은 음과 음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구실도 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이를 때까지 '갈 때는 가고, 설 때는 서고, 또 이어줄 때는 이어주는' 인생의 페달을 잘 밟으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