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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드리는 ‘소천(召天) 헌금’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4-11 (일) 20:01 조회 : 76
“목사님 오늘 교회에 계십니까?” 지난달 중순에 김형선 장로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김 장로님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오시고, 일생 군인으로 사셨기 때문인지 말씀 한마디에도 기개가 느껴집니다. 어느덧 80대 중반을 지나고 계시지만, 건강을 잘 유지하시고 운전도 잘하고 다니십니다. 제가 교회에 있다고 하니까 김 장로님은 “그럼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김 장로님은 그날 교회에 오시더니 헌금을 드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자 장로님은 가끔 교회에 오셔서 헌금을 드리고 가시곤 하셨기에 그런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장로님께서는 교회 사무실로 오셔서 그동안 모아놓은 헌금을 건네셨습니다.
비록 예배 시간은 아니었지만, 장로님께서 정성으로 드리시는 헌금을 위해서 함께 봉헌 기도를 하려는데, 헌금 봉투에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투에는 ‘召天 獻金(소천 헌금)’이라는 글귀가 한자로 쓰여 있었습니다.
‘소천(召天)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으로 개신교에서 죽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관용구입니다. ‘소천 헌금’은 기독교인으로 믿음 안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됨을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입니다. 순간 재작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부인의 소천 헌금을 드리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송옥 권사님께서 돌아가신 지는 꽤 되셨고, 그때 소천 헌금 드리셨잖아요?” 제 물음에 김 장로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목사님 이건 제 소천 헌금입니다.” “아니 장로님의 소천 헌금이라고요? 아직 이렇게 건강하신데…. 무슨 소천… 헌금을….. 지금…..” 본인의 소천 헌금을 드리신다는 장로님의 말씀에 얼떨떨해하는 저에게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혼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제가 죽으면 누가 소천 헌금을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드리는 겁니다.”
자신의 소천 헌금을 미리 드리신다는 김 장로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목이 멨습니다.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고, 자녀들을 위해 얼마든지 귀하게 쓸 수 있는 물질인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시는 마음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한 신앙인의 굳은 믿음이 넘실대는 파도가 되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삶에 감사하며 언제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가 되었다는 장로님의 담담한 고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장로님을 배웅해 드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장로님께서 놓고 가신 봉투에 쓰인 ‘소천 헌금’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제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김 장로님이 드리신 ‘소천 헌금’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결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라는 말씀처럼 장로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천국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김 장로님의 다짐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 장로님의 ‘미리 드리는 소천 헌금’을 통해 오늘을 사는 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는 라틴어 격언처럼,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는 마음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야말로 오늘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미리 드리는 소천 헌금’은 물질로만 드리는 헌금이 아닙니다. 시간도 재능도, 마음도 미리 드리는 ‘소천 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재능과 물질을 도둑이 들고, 좀먹고, 녹스는 세상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쌓는 마음으로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절이 지났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온 세상이 가득 찼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으로 숨죽였던 시간을 뒤로하고 백신의 원활한 보급으로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회복된 세상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만큼, 우리에게 맡겨진 시간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할 때입니다.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소망이 가득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