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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꾀가 날 때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11-14 (수) 19:23 조회 : 228

"삶에 꾀가 날 때"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녁마다 개인기도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사택과 붙어 있는 예배당이라고 해도 예배당은 예배당이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가지런해야 함은 물론이었습니다. 저녁마다 정숙히 차려입고 기도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늘 기쁠 수만은 없었습니다.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린 날엔 더 그랬습니다.

하루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뚫고 서울에 다녀오니 저녁 기도회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누워서 자면 딱 좋으련만 기도회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꾀가 난다.'는 말입니다. 기도에 꾀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약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혼자만 모른 체하고 슬쩍 건너뛴다손 쳐도 누구 한 사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녁 기도회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각났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핑계였습니다. '비도 내리고, 몸도 피곤하고, 내일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일찍 자야지' 이런 생각과 함께 눈 딱 감고 자리에 누웠는데,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감기지 않았습니다. 피곤하다며 등은 바닥에 댔는데 정신은 멀쩡했습니다.

꾀는 났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 예배당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가, 기도할 수 없을 때가 절호의 기회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기도하기 싫을 때가, 기도할 수 없을 때가 절호의 기회라니요?' 스스로 물었을 때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쁘게 봐 주시려나?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실까?' 질문과 동시에 답이 떠올랐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할 수 없을 때는 기도가 자라나는 절호의 기회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근육이 지쳐서 그만하고 싶을 때, 그때 하는 운동이 진짜 운동입니다. 운동하기 싫을 때, 운동할 수 없을 때 그때 운동하면 몸이 자라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기도만 그럴까요? 운동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삶이 싫어질 때, 살 수 없을 만큼 힘에 부칠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럴 때 살아내야 합니다. 그때야말로 삶이 자라나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 목사님은 비록 기도에 꾀가 났지만 이겨냈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할 수 없을 때 그 유혹을 이기고 기도하니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겠습니까? 영적 승리의 감격에 젖어 예배당을 나서는데 어느새 비는 그치고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하늘은 보통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에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빛나는 별이었고, 기도가 자라난 이에게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 찬양하기 힘들 때, 살 수 없을 만큼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말하기도 힘들어 그만두고픈 꾀가 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삶과 신앙이 자라나는 절호의 기회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발자국만 내디뎌 봅시다. 우리 인생에도 밝은 별빛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