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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세 할머니, 꿈꾼 죄로 체포되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04-16 (화) 08:41 조회 : 138

몇 주 전 영국 남서부 도시인 브리스틀시의 한 양로 시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두 명의 경찰관은 이 양로 시설에서 거주하는 앤(Anne Brokenbrow)이라는 여성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체포했다. 앤을 태운 경찰차는 경광등을 밝히며 어슴푸레한 사이렌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앤은 올해 104세로 이 양로 시설에 머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치매를 앓고 있으며,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앤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경찰에 체포되었을까?

얼마 전 양로 시설의 한 직원이 그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어 달라고 했다. '수영하고 싶다. 독서 모임에 참가하고 싶다. 춤추고 싶다. 말을 타고 싶다. 오리 먹이를 주고 싶다. 소풍가고 싶다.' 주로 이런 소원들이 나올 때 앤은 특별한 소원을 적었다. '104년을 살면서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경찰에 체포되고 싶습니다.'

이들의 소원은 '브리스틀 소원 성취선(Bristol Wishing Washing Line)'이라는 이름으로 한 쇼핑센터 벽에 붙어 지역 단체나 독지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경찰에서 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경찰은 앤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제가 체포한 사람 중에 아마 가장 나이가 많을 겁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끌려가는 앤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영국방송공사(BBC)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를 통해 이 이야기가 소개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다가 앤이 경찰에 체포될 만한 진짜 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죄는 '꿈을 꾼 죄'. 앤에게는 '경찰에 체포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그 죗값으로 체포되었다. 앤뿐 아니라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이들은 모두 다 죄인이다.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이들 이민자의 죄목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을 꾼 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을 꾼 죄값은 그리 가볍지 않다. 포근한 익숙함과 헤어져야 했고 스산하고 살천스러운 낯섦을 온 몸으로 마주하는 삶을 만나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고단함과 육신의 안전을 담보로 하고 살얼음판과 같은 삶의 현장을 지켜내야 했다. 이민자로 살면서 주어지는 삶의 안정이 '꿈꾼 값'이라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도'주변인으로서의 삶'이라는 꿈꾼 죗값은 고스란히 우리가 치러야 할 몫이다.

그 꿈만 꾸지 않았다면 남의 나라에서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을 거라는 때늦은 후회는 또 얼마나 했었는가? 꿈이라고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겠다고 왔지만 정작 꿈을 접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앤 할머니의 체포를 기획한 자선단체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양로 시설에 거주하는 것보다 앤 할머니처럼 체포되어 감옥에 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는 측면에서는 말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영국의 양로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시간은 한 달에 고작4분뿐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 통계는 이곳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다. 양로 시설에 계신 분들의 모든 소원은 다 못 들어주더라도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단 5분 만이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도록 해 드리자. 날도 풀리고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봄 선물이 될 것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19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