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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도둑맞았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6-28 (일) 22:27 조회 : 30
도둑이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도둑은 지난 두세 달을 우리의 일상에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우리에게서 소중한 것을 훔쳤다. 일상을 훔치고, 관계를 훔치고, 너그러운 마음도 훔쳤다.

이러다가는 세상이 송두리째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넘어갈까 봐 조금씩 삶의 자리를 되찾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미네소타에서 인간의 목숨을 훔치는 사건이 터졌다. 8분 46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 사람의 목에 붙은 숨을 훔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백인 경찰의 무르팍에 목이 짓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외치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의 절규는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미국의 해묵은 인종 차별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길거리로 나온 선량한 사람들 틈에 폭력과 약탈, 방화를 일삼는 이들도 숨어 있었다. 이들이 야만성을 드러내며 자동차와 건물에 불을 붙이고,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이 평화 시위의 숭고한 정신이 도둑맞았고, 인종 차별에 맞서고자 피켓을 들었던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도 도둑맞았다.

상점의 문을 부수고 당당하게 물건을 훔쳐 나오는 약탈자들을 TV 화면을 통해 보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한인 이민자들은 4·29 폭동이 재연될까 봐 마음을 졸인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인종 차별적 공권력 남용에 항의하는 시위도, 그런 어수선한 틈을 타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 이들의 폭력성도 모두 도둑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훔친 도둑들이다.

아동문학가 권순희가 쓴 ‘시간 도둑’이라는 제목의 동시가 있다. '우리 집 내 방에/ 시간 도둑이 들었어요/ 컴퓨터 게임 조금 하는/ 눈 깜짝하는 사이/ 아 글쎄!/ 세 시간이나 슬쩍 훔쳐 갔지 뭐예요/ 하지만, 더 놀랍고 얄미운 거는요/ 우리 할머니 방에/ 매일 매일 몰래 찾아와/ 몇 시간씩 화살보다 빠르게 훔쳐 가는데/ 할머니는 팔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못 잡았대요.'

시인은 컴퓨터 게임 하는 눈 깜짝하는 사이에 세 시간을 도둑맞았다고 하면서 시간 도둑은 할머니의 팔십 년 세월을 훔치는데도,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도둑을 잡지 못했다는 푸념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지금까지 도둑맞은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뜨리는 두려움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로 인한 어수선함이, 폭력과 방화, 약탈로 정의를 가리는 부당함이 우리의 시간을 훔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도둑맞고 살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인생 아닌가?
<LA중앙일보 칼럼, 2020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