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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괜찮아!"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11-04 (수) 11:53 조회 : 14

 빌리를 처음 만난 건 장례식장에서다. 아니 만났다고도 할 수 없는 게 빌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굳게 닫힌 관 속에서 빌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장례를 치를 목사를 맞이했다.

관 앞에 놓인 영정 사진에는 20대 청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나 적 없는 빌리의 장례식을 집례하게 된 것은 빌리의 아버지 함 선생 때문이다.

어느 날 함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더니 훌쩍이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한참 만에 마음을 가라앉힌 함 선생은 아들이 죽었다고 했다. 엊저녁까지 멀쩡하던 아들이 새벽에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미 다녀갔고, 장의사에서 아들의 시신을 데려갔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장례 일정을 잡았다. 그래도 목사가 장례식 설교를 하려면 고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야 하기에 함 선생 내외를 따로 만났다. 아들의 장례식을 앞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몇 살이에요? 공부는 어디서 했나요? 장례식에는 누가 오나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좀 있나요? 신앙생활은 잘했나요?" 질문은 많이 했는데 돌아온 답은 별로 없었다. 죽은 아들의 이름은 '빌리'고, 남동생이 하나 있고, 남동생 친구들이 운구를 도울 것이라는 말밖에는 듣지 못했다.

자식의 삶을 말 못 하는 부모에게도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막막한 마음으로 빌리의 장례식을 준비하는데 "그래, 괜찮아!"라는 말이 다가와  마음에 둥우리를 틀었다. 빌리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장례식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빌리야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그래, 괜찮아!'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서웠니. '그래, 괜찮아!'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다 포기했구나. '그래, 괜찮아!' 이제 천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렴. 너에게 '그래'라는 미들네임을 지어주고 싶구나. '빌리 "그래" 함' 그러고 보니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같은 이름이 되었구나. 세상에서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만 알고 ‘빌리 "그래" 함’은 잘 모르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나 너를 모두 다 잘 아신단다. ‘빌리’야, '그래, 괜찮아!'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렴."

"그래, 괜찮아!" 오래전 '빌리'에게 한 말이 떠오르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말 못할 고민을 이고 사는 우리의 인생이 애처로운 탓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한다면 자신을 다독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보자. “그래, 괜찮아!”라고 말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20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