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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속의 토끼"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4-11 (일) 19:59 조회 : 70
‘25시’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독일로 망명해 군에 입대했다. 게오르규가 배치된 곳은 잠수함이었다.
게오르규가 근무할 때만 해도 잠수함에는 산소 측정 장비가 없었다.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가면서 안전을 위해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던 것처럼 당시 잠수함을 타는 승무원들은 산소 부족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토끼를 데리고 탔다.
산소 부족으로 토끼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잠수함은 물 위로 떠올라 환기를 시켰다. 승무원들은 토끼를 잠수함 가장 아래에 앉혀 두었다. 토끼의 ‘민감함’은 잠수함에 탄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 역할을 했다.
어느 날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에서 경보장치 노릇을 하던 토끼가 죽었다. 당장 토끼를 대신할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때 선택된 사람이 게오르규였다. 잠수함에 탄 승무원 중에서 비교적 탁한 공기에 민감했던 게오르규가 잠수함의 맨 아래 토끼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훗날 게오르규는 잠수함에서 근무했던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진정한 문인(文人)은 현실이라는 세계가 지닌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오르규는 또 세상을 일깨우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인이라면 누구든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잠수함 속의 토끼 노릇을 해야 할 사람들은 ‘문인’이나 ‘지성인’만이 아니다. 언론은 언론대로 세상의 어긋남을 알리는 잠수함 속의 토끼 역할을 해야 한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경영인은 사업체에서, 종교인은 수행의 자리에서 잠수함 속의 토끼가 되어야 한다. 세상살이가 야박해지는 것은 세상이 악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을 악이라고 말해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민자로 만들어진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선량한 아시안 이민자가 길과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해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이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온 한인 미망인에게 아시안 하나가 사라져서 잘 됐다고 하면서 당신도 짐을 싸서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잔인한 내용의 편지가 배달되는 세상이다.
아시안 이민자들이 소리를 낼 때다. 인종 차별과 혐오범죄로 사회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알릴 때다. 우리가 잠수함 속의 토끼가 되어 이 땅에서 정의가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할 때다.

<LA 중앙일보 칼럼, 2021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