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은 명(命)이다
생(生)은 명(命)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생(生)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최고의 의무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더 쉬운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천형처럼 드리운 야속한 불행에 발목이 잡혀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사람,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듣게 된 “암 말기” 선언으로 인해 두려움과 통증으로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절대의무입니다. 생명은 우리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한국의 톱스타 연예인 중의 한 사람인 “박용하 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동안 주춤했던 한국의 자살 문화가 다시 부활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됩니다. 한류 열풍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사람들 중의 하나여서 그랬는지 일본과 한국에서 그의 죽음에 충격 받고, 모방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본능인 “생명”을 버리는 모진 결단을 했을까, 동정이 가기도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던 생명을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정치에 반역하는 최후의 치명적인 도전입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사명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붙잡고 어떻게 하든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어렸을 때 매년 초등학교에서 학예발표회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연극반”이었던 저는 해마다 연극발표에 참여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이번 연극에서는 나에게 어떤 배역이 주어질까 조마조마하면서 숨죽여 기다리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암기해야 할 분량은 얼마나 될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게 될지?” 기대감과 불안을 가지고 연극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와 파트너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불행히도 그 아이가 “엄마 개구리” 역을 맡고, 저는 엄마 말을 안 듣는 제 멋대로 살다가 집을 나간 “아들 올챙이” 역을 맡았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군밤도 맞고, 훈계도 듣고, 나중에는 집을 나갔다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품에 안겨 울어야 하는 역할을 정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극반을 그만 두려고 하는데 지도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어떤 배역을 맞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 하는 것이란다.”
역경 없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힘겹고 어려운 고비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인들은 절망의 순간 에서도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에 자기에게 부여된 인생의 분량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신앙인들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