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줄이면 충분합니다!
남가주 지방 “여선교회 수련회”에서 “사회과목”을 맡아 4시간 동안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홍보 책자에 싫게 될 “약력”(Biography)을 사진과 함께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드러낼 만한 이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이력서를 쓴다는 사실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결국, 곰곰이 생각하다가 세 줄을 썼습니다. 졸업한 신학교, 이전에 섬기던 교회 이름, 그리고 지금 섬기고 있는 LA 연합감리교회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또 다른 이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력란에 뭔가를 더 기록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예전에 강의를 맡았던 목사님들의 이력서도 견본으로 첨부해서 보내주셨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보통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데 목사님도 정성껏 기록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미국교회 성도님들께 저를 멋지게 소개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이력서를 적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경 써 주시는 것이 너무도 감사해서 그렇게 하려고 케케묵은 저의 과거사를 다 들추어내고, 상품이 될 만한 것을 발굴해 보았습니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속담이 맞았습니다. 거의 두 장에 달하는 훌륭한 “인물소개서”가 완성되었습니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밑바닥부터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어로 쓰니까 더욱 그럴 듯 해 보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잘 난 사람인 줄은 여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참, 그 놈 대단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력서를 다시 읽어보면서 조금씩 수정을 하다 보니, 양심에 찔리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마치지도 못한 것이 많이 있었고, 어떤 것은 어부지리로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력은 졸업한 것이 맞기는 하지만, 저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적어 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포상이나 수상 경력에서는 얼굴이 간지럽고, 몸에 닭살이 돋아서 도무지 바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 없는 것을 하나씩 다시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세 줄이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제가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확실한 이력은 딱 세 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인격체끼리 만나는 현장에서 글로 몇 줄을 깔고 코팅된 모습으로 만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이 따위 짓 할 시간이면 좀 더 잘 준비해서 참석자들에게 정확한 지식과 감동을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못난 놈이라 그런지 항상 조용히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저녁에 다시 홍보책자를 준비하시는 권사님께 이 메일을 썼습니다. “권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폼 좀 내려고 이력을 찾아 보았는데, 정말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세 줄도 너무 많습니다. 대신 제가 열심히 해서 기억에 남는 좋은 수련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껍질을 벗으니까, 마음도 새로워지고, 머리도 훨씬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여선교회 수련회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못난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