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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제목: 08-15-2010 죽어라고 쐈더니

작성자: 사무실
Updated on 02/06/2012

 

 

처음 군()에 입대해서 제일 힘들고 무서웠던 것 중의 하나가 총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군인이 총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한심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저는 분명히 함량미달의 군인이었습니다.  고막을 찢는 듯한 파열음은 항상 총을 쏠 때 눈을 감게 만들었고, 총알이 발사된 후에 인정사정 없이 뺨과 눈두덩을 강타하는 개머리판 덕분에 총을 쏘고 나면 항상 얼굴이 퉁퉁 붓곤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며칠 동안 머리 속에 남아서 윙윙거리는 매미 소리(?)였습니다.  총 안 쏘는 군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이등병 시절을 거의 다 보냈습니다.  덕분에 저에게 붙여진 별명은꼴통이었습니다.  전투력 측정”(Attack Technique Test)이 있을 때면, 저는 항상 서류상으로병원 후송병처리가 되었습니다.  훈련에 참가하면, 저 같은 놈들은 점수를 까먹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항상 혼자 남아서 내무반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대대장님이저 놈은 목사 밖에는 할 것이 없는 놈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놈들 치고 쓸 만한 놈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했는데, 갑자기 가슴 속에서하는 것이 치밀어 올라 왔습니다.  적성에 전혀 맞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할 군 생활이라면 악착같이 하자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때마침, “삼군사격 대회에 나아갈 저격병들을 모집하는 광고가 군의 게시판에 게재되었는데,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대로, 제 의지도 스스로 시험할 겸 가차 없이 저격병에 지원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장교들이가만히 안 있어. XX!” 호통을 쳤지만, 제가 귀찮아서였는지, 대대장님이 저를 영원히 후송 보내는 마음으로 사격장 파송을 결정하셨습니다.  덕분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예비군 일개 대대가 쏠 수 있는 양의 총알을 혼자서 6개월 동안에 다 소모해 버렸습니다.  더 이상 머릿속에서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총을 쏠 대마다 들리는 강렬한 파열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후폭풍 때문에 뒤로 밀리면서 얼굴에 와 닿는 개머리판의 떨림이 이제는 부드럽고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바람을 가르면서 날아가는 총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득도(得道)한 것입니다.

 

   삼군사격대회에서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입상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포상휴가를 갔습니다.  더 이상 고문관도 아니었고, 대대에서 총을 가장 잘 쏘는 특등사수로 불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면 서울의 태능사격장으로 전출시켜 주겠다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 중에서 사격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졌습니다.  총을 쏘는 날은 항상 포상휴가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쏴도 표적을 다 맞출 자신이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연습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온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 100%”라고 믿었던 것이절대 가능 100%”로 바뀐 군 생활 최고의 교훈이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표적지에도 쉬지 않고 총질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경건 연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표적이 되시는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만 바라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반드시 신앙의 왕도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12:2).  주님 만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음을 삶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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