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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LA 1

제목: 故이태석 신부 일대기..울지마 톤즈...

작성자: 황영희
Updated on 02/06/2012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거지의 해진 바지를 꿰매 주던 마음 따뜻한 중학생. 이 소년은 커서 의사가 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로 달려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돌본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얘기의 주인공은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감독 구수환)는 의사이자 신부, 선생, 지휘자, 건축가 등 1인 다역을 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발자취를 담았다.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난 이 신부삯바느질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당당히 의대에 합격해 의사가 된다. 그러나 안락한 삶과 보장된 성공을 뒤로 한 채 2001년 신부가 돼 수단의 톤즈로 떠난다.

   가뜩이나 가난한 수단은 북쪽의 아랍계와 남쪽의 원주민들 간에 내전이 벌어져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이곳의 유일한 의사였던 이 신부는 '쫄리'(John Lee)로 통했다.

   작은 상처 하나를 치료하지 못해 죽어가던 사람부터 중환자까지 몰려들었다. 하루 진료 환자가 300명이 넘었다. 2-3일 걸려서 100㎞ 넘게 걸어오는 이도 있었다. 이 신부는 특히 손발마저 성치 않은 한센인들에게 큰 애정을 쏟았다.
환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손수 병원을 짓는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만들어 건물을 쌓아 올렸다.

   병원이 자리를 잡아가자 곧바로 학교 건립에 나섰다. 톤즈 최초로 초ㆍ중ㆍ고 12년 과정의 정규 학교가 생긴 것이다. 한국에서 교복을 구해다 아이들에게 입히고 음악과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신부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데도 정열을 바쳤다. 전쟁과 폭력, 가난과 질병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 풍금과 기타를 혼자서 익힐 정도로 음악에도 소질이 있던 이 신부는 설명서를 읽고 사용법을 터득해 아이들에게 여러 악기를 가르쳤다.

   이런 노력은 남수단 최초의 35인조 브라스밴드 창단으로 이어졌다. 나중엔 정부 공식 행사에서도 연주를 맡게 됐다. 한국에서 공수한 단복을 갖춰 입은 밴드 맨 앞에는 항상 지휘자 이 신부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이 신부의 생전 모습, 아버지 같았던 '쫄리'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톤즈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암 선고를 받은 직후 평온한 얼굴로 노래하는 이 신부, 며칠이라도 아들을 곁에 두고 싶던 노모의 인터뷰,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오열하는 톤즈 아이들의 인터뷰 장면 등은 가슴 찡하다.
이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도 부산의 한센인 마을에서 사역한다. 이들 형제의 이런 희생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어렸을 때 함께 본 다미안 신부의 영화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의 작은 섬에 있는 한센인촌에 들어가 봉사하다가 40대 나이에 자신도 한센병으로 숨졌다.

   이 신부는 2008년 생애 처음 받은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였다. 이후 힘든 투병생활 끝에 올해 1월14일 선종했다.

   "처음엔 너무 가난해서 계획을 많이 세웠지만 같이 있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과 같이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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